[디 애슬레틱] 후벵 아모림, 맨유 감독 부임 1년: 숨겨졌던 비밀 회동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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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미나이낙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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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디 애슬레틱] 후벵 아모림, 맨유 감독 부임 1년: 숨겨졌던 비밀 회동의 전말](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5/20251101/9104104242_340354_11988e63539e344df37581d297a20b54.png)
지난해 11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임명된 후벵 아모림
1년 전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후벵 아모림을 2027년 여름까지 계약된 새로운 사령탑으로 발표했다.
구단 역사상 반세기 만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며 리그 15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지금, 마침내 맨유는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경질된 에릭 텐 하흐의 후임으로 맨유가 처음부터 고려했던 이름은 아니었지만, 아모림 선임의 씨앗은 이미 6개월 전부터 뿌려지고 있었다.
여기, 디 애슬레틱의 앤디 미튼 기자가 맨유가 어떻게, 그리고 왜 포르투갈 출신의 아모림을 선임하게 되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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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의 비밀 회동: 10월, 아모림 감독이 자신의 비전을 밝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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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제르비와 투헬 선임에 근접했던 맨유: 로베르토 데 제르비 또는 토마스 투헬 감독을 선임할 뻔했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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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후보에서 제외된 아모림: 아모림 감독이 처음에 감독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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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추천을 받은 또 다른 유럽 감독: 유럽에서 활동 중인 감독 중 강력한 추천을 받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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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하흐의 퇴장과 아모림의 등장: 텐 하흐 감독의 경질과 아모림 감독의 선임으로 이어진 일련의 회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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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트래포드행을 수락한 순간: 아모림 감독이 맨유의 제안을 수락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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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과 달라진 올여름 이적 시장: 올여름 영입이 2024년과 다른 이유
시간은 2024년 5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맨유는 리그 8경기에서 단 1승에 그치고, 크리스탈 팰리스에 0-4로 대패하는 등 끔찍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비록 FA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맨유 수뇌부의 깊은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장 클로드 블랑 임시 CEO, 데이브 브레일스포드 경, 제이슨 윌콕스 디렉터 모두 불만족스러웠다. 특히 팰리스전 대패와 챔피언십 소속 코번트리 시티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신승을 거둔 혼란스러웠던 FA컵 준결승전 이후 불만은 극에 달했다.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 아직 공식적으로 CEO 업무를 시작하지 않은 오마르 베라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짐 랫클리프 경과 글레이저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모나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팀이 단순히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는 집단적인 결론이 내려졌다.
맨유는 감독 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데이터 분석에 착수했지만, 신중을 기해야 했다. 구단의 내부 데이터 역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새로운 의사 결정권자들은 잠재적인 후보의 이름이 언론에 유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분석은 공격적인 4-3-3 시스템을 기반으로 다양한 감독들의 경기 모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공을 소유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팀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데이터가 활용되었고, 프리미어리그 경험 또한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분석 결과 토마스 투헬,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로베르토 데 제르비, 토마스 프랭크, 마르코 실바, 그레이엄 포터 등 6명의 후보가 추려졌다. 맨유는 이들 모두와 비공식적인 접촉을 시작했다. 투헬과 데 제르비가 최우선 후보였고, 5월 말부터 맨유는 직접 또는 화상으로 후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모림은 프리미어리그 경험과 특정 전술 시스템을 중시했던 초기 명단에는 없었다. 하지만 에이전트 및 선수들과의 대화에서 그의 이름은 꾸준히 거론되었다. 윌콕스 디렉터가 축구계의 차세대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을 수소문했을 때도 아모림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유벤투스 부임이 임박했던 티아고 모타 역시 함께 거론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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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유력 감독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모림과 함께 모타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맨유는 두 감독 중 아모림에게 먼저 접촉했고, 윌콕스가 스포르팅 CP의 아모림 감독과 비공식적인 대화를 나눴다. 윌콕스는 그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맨유 구단은 대대적인 내부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모림이 새로운 나라의 빅클럽으로 합류하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댄 애쉬워스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떠나 스포츠 디렉터로 부임할 예정이었고, 크리스 비벨은 영입 디렉터로 합류하는 시점이었다. 새로운 스태프들은 선수단 개편과 비용 절감이라는 복잡한 배경 속에서 서로를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였다.
대규모 기반 시설 변화도 예정되어 있었다. 캐링턴 훈련장의 개선 공사에 5,000만 파운드가 투입되면서 1군 선수단은 임시 건물에서 생활해야 했다. 구단의 데이터 부서에 대한 투자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는 해외에서 새로운 리그에 도전하는 감독에게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맨유는 투헬과 데 제르비 쪽으로 기울었다. 데 제르비는 다소 독특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투헬은 텐 하흐 감독의 맨유가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한 지 2주 후, 모나코에서 맨유 수뇌부와 만났다. 투헬은 매우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역시 맨유 감독직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불과 한 달 전에 팀을 떠났던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다.
결국 데 제르비가 선두 주자로 떠올랐고, 맨유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재정적인 조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조건은 거절되었고, 구단은 이를 개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데 제르비는 이후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향했으며, 그곳에서 받을 연봉은 맨유 감독직에 비해 낮은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맨유는 텐 하흐 감독과 동행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구단은 텐 하흐 감독이 첫 시즌에는 뛰어난 성과를 냈다는 점을 인정했다. 두 번째 시즌은 그렇지 못했지만, 부상이 심각했고, 복수의 관계자들이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묘사한 라커룸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감안했다. 텐 하흐 유임의 한 가지 장점은 그가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구단이 직면한 여러 변화에 또 다른 변화를 더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텐 하흐 감독의 소통 방식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FA컵 결승전 승리 후 16일이 지나 맨유는 마침내 그에게 유임 의사를 전달했다.
다음 날, 브레일스포드가 이끄는 그룹은 휴가 중이던 텐 하흐 감독이 있는 이비자로 향했다. 시험대에 올랐던 신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선수단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계약 연장도 제안받았다. 이는 그가 코칭 스태프 대부분을 교체한다는 조건하에 이루어졌고, 그는 이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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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하흐는 여름을 넘겼지만, 아모림은 이미 맨유 수뇌부의 미래 구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맨유는 이제 당시 여름 이적 시장 활동을 '기회주의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상황이 이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인사들이 여전히 합류하거나 적응하는 과정에 있었고, 자금은 빠듯했다. 라파엘 바란과 같은 고액 연봉자가 팀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기록하던 맨유에게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임대생 소피앙 암라바트는 잔류를 원했지만, 맨유는 파리 생제르맹에서 주전이 아니었기에 감당 가능한 이적료로 영입할 수 있었던 미드필더 마누엘 우가르테를 선택했다. 우가르테는 여러 곳에서 강력한 추천을 받았으며, 특히 한 저명한 국가대표팀 감독은 그가 맨유의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릴 것이라고 믿었다.
모타 감독 아래 볼로냐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공격수 조슈아 지르크지는 비교적 낮은 바이아웃 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바이에른 뮌헨에서 이미 검증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었던 수비수 마타이스 더 리흐트와 누사이르 마즈라위는 각각 4,500만 유로와 1,500만 유로의 합리적인 금액에 영입이 가능했다. 텐 하흐 감독은 동향 출신인 더 리흐트의 영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레니 요로는 '세기의 재능'으로 평가받았다. 맨유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와 정면으로 맞붙었고, 마침내 그를 설득하여 올드 트래포드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요로는 한동안 맨유의 영입 레이더에 있었고, 그에 대한 세밀한 스카우팅도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적 압박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1년 뒤의 영입 과정에서 따랐던 수준의 면밀한 검토와 계획 없이 계약이 이루어졌다. 비교를 위해 설명하자면, 올해 2월이 되자 맨유는 이미 마테우스 쿠냐와 브라이언 음부모를 여름 영입 대상으로 정했고, 두 선수에 대해 필요한 상세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7월 13일, 베라다가 CEO로 공식 부임했고, 2024-25시즌은 바로 다음 달에 시작됐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맨유는 텐 하흐 감독과 라커룸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그가 선수들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10월, 연이은 부진 끝에 맨유는 2년 남짓 함께한 감독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새로운 스태프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혼란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6월에 비해 잃을 것이 적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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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림 감독 선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윌콕스(왼쪽)와 베라다(오른쪽)
또 다른 회의가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이곳은 랫클리프의 이네오스(INEOS) 그룹이 아메리카 컵 참가를 위해 베이스캠프로 사용하는 사무실이었다. 이 회의에는 윌콕스, 7월 1일에 합류한 애쉬워스, 그리고 베라다가 참석했으며, 블랑, 브레일스포드, 랫클리프도 함께했다.
그들은 6월에 차기 감독을 물색하며 얻었던 교훈을 되짚었다. 6월과 달리, 이번에는 구단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길 원했다.
10월에는 런던 중심부의 이네오스 본사에서 추가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집행위원회는 텐 하흐 감독의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계획은 뤼트 판 니스텔로이 수석코치가 임시 감독을 맡는 것이었다. 텐 하흐 사단의 일원으로 불과 3개월 전에 합류한 그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인기가 많고 존경받았지만, 정식 감독직을 수행하기에는 코칭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새로운 감독이 누가 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추가 회의가 열렸다. 바로 그때 축구 부문 경영진의 의견이 아모림으로 모아졌고, 베라다가 계약을 성사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 시작은 계약에 필요한 핵심 세부 사항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즉시 감독직을 맡는 데 관심이 있는지,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계약에 명시된 바이아웃 금액은 얼마인지, 예상되는 연봉 요구액, 그리고 언제 누구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지 등이었다.
베라다는 맨시티에서 선수 협상을 이끌었던 시절의 인맥을 활용해 아모림의 에이전트인 라울 코스타에게 접근했다. 베라다는 스포르팅 CP에도 연줄이 있었다. 그 결과 아모림의 바이아웃 금액이 1,000만 유로이며, 그가 맨유 감독직에 대해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0월 18일, 스포르팅이 알가르브에서 열린 컵대회에서 포르티모넨스를 꺾은 후, 맨유 관계자들은 10월 말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서 아모림과 처음으로 직접 만났다. 베라다, 애쉬워스, 윌콕스는 맨체스터에서 전용기를 타고 날아왔다. 랫클리프와 브레일스포드 역시 전용기로 안달루시아에 도착해 나중에 합류했다. 아모림과 그의 에이전트는 포르티망에서부터 2시간을 운전해 개인 주택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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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스포르팅 팬들로부터 감동적인 환송을 받는 아모림 감독
대화는 5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모림은 자신의 축구 비전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스리백을 기반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신의 철학에는 유연성이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변화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여러 시스템에서 뛸 수 있는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한 선수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선호하는 시스템과의 주된 차이점은 윙어 대신 윙백을 사용한다는 점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스날과 맨체스터 시티가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특히 맨시티는 2023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당시, 전원 센터백으로 구성된 포백 수비를 구사하며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아모림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확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의 카리스마, 감성적이고 전술적인 지능, 그리고 젊은 선수와 베테랑 선수를 아우르는 소통 방식과 비디오를 활용하는 방법 등은 모든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맨유는 그를 3~4년에 걸쳐 완전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보았지만, 시기가 최적은 아니었다. 아모림은 여러 차례 이렇게 물었다. "왜 지금인가? 시즌이 끝난 후가 아니라?"
맨유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그를 시즌 중에 데려오면 팀이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았지만, 그가 부임 첫 몇 달 동안 스쿼드, 구단,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파악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았다.
맨유는 자신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하고 있다. 베라다 CEO가 여름 '유나이티드 위 스탠드' 팬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만약 후벵이 2025년 7월 1일에 시작했다면, 우리는 이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7~8개월 동안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겪은 경험과 고난, 그리고 팀이 겪은 어려움이 앞으로 우리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맨유의 연패를 지켜보며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모림 감독은 시즌이 끝난 후 잉글랜드로 오고 싶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1년 전에 구단에 합류한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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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맨유에서의 첫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도착한 아모림 감독
세비야 회동 후 일주일 동안, 베라다는 아모림의 에이전트와 협상을 시작했다. 그는 맨유가 원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구단은 또한 아모림의 절친한 친구인 우구 비아나가 이웃 구단인 맨시티의 풋볼 디렉터로 합류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만약 비아나가 그곳에서 그의 전임자인 치키 베히리스타인이 누렸던 것과 같은 수준의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떠날 경우 아모림 감독이 후보 명단에 오를 것이라는 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는 맨유의 결정에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10월 25일 금요일, 모든 숫자와 계약 조건이 확정되었다. 토요일, 맨유는 아모림의 최종 승락만 남겨두고 있었지만, 그는 망설였다. 스포르팅은 시즌 중반을 보내고 있었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그 역시 야심이 있었다. 그는 베라다와 윌콕스를 포함한 관련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베라다는 랫클리프에게 메시지를 보내 마침내 원하는 인물을 얻었음을 알렸다.
그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았다. 맨유는 다음 날 런던에서 웨스트햄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 경기는 패배로 끝났고, 텐 하흐 감독 체제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 패배로 맨유는 리그 9경기에서 3승 4패, 단 8득점에 그치며 프리미어리그 14위로 추락했다. 텐 하흐 감독은 10월 28일 월요일, 캐링턴 훈련장에서 베라다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그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맨유는 아모림 감독 체제 하에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스포르팅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베라다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모든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처리하고 싶었고, 리스본에서 프레데리쿠 바란다스 회장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텐 하흐에게 경질을 통보한 직후, 베라다는 상업 항공편으로 리스본으로 향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비아나는 그 월요일 밤 개인 자택에서 열린 회의에 스포르팅의 부회장인 프란시스쿠 제냐와 함께 참석했다. 스포르팅은 시즌 중에 감독을 내주는 대가로 1,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요구했다.
양측은 그날 밤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베라다와 제냐는 다음 날 다시 만났고, 맨유가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아모림이 두 경기를 더 스포르팅 감독으로 머무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두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시티전과 리그 브라가 원정 경기라는 중요한 경기였다. 스포르팅은 11월 5일 홈에서 맨시티를 4-1로 대파했고, 5일 후에는 브라가를 상대로 4골을 더 넣으며 프리메이라 리가 타이틀 방어를 향한 순항을 이어갔다.
리스본에서의 협상 후, 베라다는 구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데 만족하며 맨체스터로 돌아왔다. 이 소식은 포르투갈 현지 소식통을 통해 디 애슬레틱이 단독 보도했으며, 베라다는 비행 중에 뉴스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주 후, 베라다가 웹서밋 컨퍼런스 연설을 위해 리스본을 다시 찾았을 때, 그가 무대를 떠나자 30명이 넘는 현지 기자들이 그를 맞이했다. 그만큼 이 계약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아모림은 스포르팅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던 브라가전 다음 날이자 A매치 기간이 시작되는 11월 11일에 공식적으로 감독직을 맡았다. 맨유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합의한 지 한 달 만이었다. 그의 첫 경기는 13일 후 입스위치 타운 원정 경기였다.
이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6764537/2025/11/01/ruben-amorim-manchester-united-secret-meetings/
